우리 인간은 사실과 기대가 어긋나는 모순 속에서들 살고 있는데 그 모순이 미묘하다. 이것이 가벼운 일이라면 고뇌를 느끼지 않는다. 또한 이것이 세월이 흐르고 하면 저절로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고 잊어 버리고 만다면 그것으로 끝나겠지만 그 모순이 크고 문제가 확대되어 갈 때는 실망에 낙담하고 자포자기하여 '노이로제'에 걸리기도 하고 광포해서 자살을 하거나 또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는 어찌 할 수가 없을 때에는 초인간적인힘, 곧 신(神)의 타력(他力)에 의지 하려 한다. 그래서 점술가에게 묻게 되고 앙화의 침범을 면하기 위하여 별별짓들을 다하여 해결을 구하려고들 한다. 이것은 원래 정신이 박약한 사람은 큰재난을 만나면 어떻게 모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자포 자기'하여 자신위 목숨을 끊는 최후의 태도에 대하여서는 지금 내가 말하려는 문제가 아니니까 개론(介論)할것도 없지만, 복술이니.관상인.사주팔자니.하는 것에 의지 하려는 것은 일종의 타력신앙인 종교심이 일어나는 것이라 하겠다. 아울러 이것이 종교적 기연이 되어서 비로소 인생이 어떤 것임을 알게되는 적절한 시기가 되어질 때 올바른 지도를 받기만 하면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고 훌륭한 종교신앙을 얻을수도 있다. 그렇지가 못하고 욕심에 끌려서 '사언(邪言)' '망어(妄語)'만 곧이듣고 '미신(迷神)' '사교(邪敎)'에 빠져서 그들의달콤한 말에 걸려들게 되면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려고 욕심에 영합하는 사교(邪敎)로 떨어지기 쉬운 것이다.
무릇 종교라고 하면 숭신(崇神)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지만 아무 잡신(雜神)이라도 위하기만 하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많은 종교 가운데 에서도 정과 사가 있으니 아무신이라도 숭배하는 것은 유사종교는 될지 모르나 만인이 공인(公認)하고 의지하는 정교(正敎)는 되지 못한다. 의타신앙(依他神仰)을 가진 타력신앙(打力神仰)의 종교라도 권선징악의 도의적 정신(道義的精神)이 있고 계명(戒銘)이 있으며 어느정도의 오묘한 철학적 진리가 있어서 혹세무민상(惑世誣民相)을 떠난 것이라야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조건 믿으면 된다. 의심하지말라. 은총과은혜가 있다. 그 어느 부적을 지니고 있어라. 등등의 말들은 잠시 정신적인 효과는 있을지언정 그효력은 낙심과 원망심만 낳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신성한 종교라고는 볼 수없는 것이다. 이것은 어데까지나 잘못된 미신의폐단인데 유감스럽게도 오늘날까지 이 어리석은 부작용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사실과 기대가 모순되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서 가족 가운데 병든사람이 생기면 악령(惡靈)이 붙은 것이라 하여 약(藥)을 쓸줄 모르고 귀신을 쫒아내는 어리석음의 짓들을 하고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일어나면 하늘이 노하고 신령이 노하였다고 별별짓들을 다하곤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도와준다는 말과 같이 정직한 자심(自心)인 내재신(內在神곧 자기)이 자신을 돕는 것이며, 결코 외신(外神)이 자신을 도와주는 것은 아니며, 모든것은 소박한 원시시대의 사고방식으로 만들어낸 인간의 마음이지 그러한 신이 결코 실제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으로서 그어느 문제를 해결하려면 물질의 문제를 떠나서 정신의 문제로 돌아와서 탐(貪)을 버리고 욕(慾)을 버려서 마음을 지족소욕(知足小慾)으로 다루어 나간다면 설사 생활이 궁핍 할지라도 마음속에 평안과 안락을 얻을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불교는 모든것을 마음에 중점을 두고 마음 가짐으로써 사실과 기대가 모순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역점을 두고 자신의 근본 마음을 돌이켜보고 반성하고 참회하는 그 속에서 모순이 자신에게서 비롯됨을 정관(靜觀)하고 그 이유를 간과하는 동시에 그 무엇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였으며 그 무엇 때문에 생겼었던가를 마음속으로 관찰하여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마음이 만법(萬法)의 근본이 되는지라. 그 마음속에 악(惡)을 생각하면 그것이 언행(言行)으로 나타나서 죄고(罪苦)가 따르게 마련이다. 수레가 바퀴 자국 위를 따라 굴러가는 것과 같으니라. 마음이 만법(萬法)의 근본이 되는지라. 마음속에 선(善)을 생각하면 그것이 언행으로 나타나서 복락(福樂)이 따르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