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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禪佛敎曹溪宗의 佛法傳系受至錄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9-02-14 (목) 00:55 조회 : 1044
2022_06_04 16_27.mp4 (56.3M), Down : 0, 2022-07-16 16:38:59


















" 대한선불교조계종의불법전계수지록 "
불법전계 법통은 한국의 선법을 중흥하고 근현대사의 "선계(禪界)를 장식한 "성우.경허"증조부
조사增祖夫祖師 님의 "선풍(禪風)을 이어서 "중원.한암(重遠.漢岩)조부조사(祖夫祖師)님의 법
맥(法脈)을 이어받아 한암문중 "성관.룡명(聲寬.龍溟) 불법전계 전수법좌(佛法傳係 傳受法坐)
룡담.룡산(龍潭.龍山) 대종사(大宗師) 은법계손(恩法系孫) 으로서
"중원.한암문중 성관.용명법손 룡담.룡산 문도회를 결의하여 대한선불교 조계종의 법통을 이어
우리나라 한국불교의 근본 맥을 잇고저 하며 호국불교 "선종의사상.이념인.상구보리 하와중생
구제"의 불타세존의 대자대비 사상으로서 무명에서 허덕이는 중생들에게 밝은 광명인 깨우침
을 전하여 인간인 사람의본성품으로 인도하여 밝은 참삶을 살도록 인도 함에 있다.
1; 대한선불교조계종은 불타의 세존 석가모니불을 교주로하여
2; 제28조 보리달마존자 (菩提達磨尊者)를 이어서
3; 제29조 태가혜가대사 (太祖慧可大師)를 이어서
4; 제30조 감지승찬대사 (監智僧璨大師)를 이어서
5; 제31조 대의도신대사 (大醫道信大師)를 이어서
6; 제32조 대만홍인대사 (大滿弘忍大師)를 이어서
7; 제33조 대감혜능대사 (大鑑慧能大師)를 이어서
8; 태고보우대선사 (太古普愚大禪師)를 이어서
9; 불일보조대선사 (佛日普照大禪師)를 이어서
10; 경허(성우)대선사 (鏡虛.瑆牛大禪師)를 이어서
11; 한암(중원)대선사 (漢岩.重遠大禪師)를 이어서
12; 용명(성관)대선사 (龍溟.聲寬大禪師)를 이어서 (대한선불교초대종정)
13; 용담(룡산)대종사 (龍潭.龍山大宗師)를 이어서 (대한선불교조계종 제2대종정)

대한선불교 조계종 증조부 조사님의
증조부조사님.경허성우대선사(鏡虛.瑆牛大禪師)조사님은 우리나라 선법(禪法)을 중흥하시고
최근세의 "선계(禪界)를 장식한 대선사(大禪師)이신 것이다.
경허선사께서는 구 한국끝 무렵인 고종22년(1885년) 전북 전주 "송씨(宋)씨 가문에 태어낳아
아홉살 때에 어머니를 따라 경기도 광주 "청계사(淸溪寺)에 가셔서 행자로 있다가 중이되어서
법명을 성우(瑆牛)라고 하였다. 그후 청계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다가 14세에 한선
비가 청계사에 유숙하면서 글을 가르처 주었다. 일러주면 곧 알아 듣고 외웠다,
"선비와 스승되는 "계허(桂虛)스님은 크게 경탄하여서 그 뒤에 계룡산 동학사(東鶴寺) "만화(萬
化)스님 앞으로 보내었다. 만화스님은 성우에게 글을 가르처 보니 재주가 비상하므로 기뻐하셨
다. 십년 이내에 불교 교과 전부를 마쳤을 뿐만 아니라. 유교. 서적과 도가 서적을 모두 독파하
였다. 이제는 패기 만만한 대장부로서 누구 앞에서도 당당한 대 학자(大學者)요 대교가(大敎
家) 가 되었다.23세 때에는 "만화(萬化) 스님의 뒤를 이어 법호를 "경허(鏡虛)로 하고 대 강사
(大講師)가 되어 학인(學人)을 접 하기를 7.8.년 동안하시고 그의 나이 31세때에 홀연히 옛스승
인 "계허의 안부가 궁금하여 가던 도중. 맑은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더니 뇌성 벽력이 치면
서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하였다, 경허스님은 근처 동네로 뛰어 들어 갔다. 
어느집 처마밑에 몸을 붙이고 비를 피하려고 하니. 집 주인이 고래 고래 고함을 치면서 빨리
이 자리를 피하라고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경허스님은 다른 처마 밑으로 갔다. 그 집에서도 마찬가지로 야단이 었다. 까닭을 알고 보니.
보니; 그 동네에 "코렐라"같은 전염병이 유행하여 전염병에 대한 예방약이 없어서 병이 돌면 
왕래를 금지하는 것을 상책으로 알았다. 경허스님은  거리에서 비를 맞으며 밤을 세웠다.
생각하니 자기도 그 전염병에 걸려 죽을 것만 같았다. 따라서.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불교의교
리도. 이제는 아무 쓸모도 없고 오직 죽음의 두려움 밖에에 없었다.
한편 서글프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였다.
"내가 무순 불교를 다 배웠단 말인가?
순간 불같이 일어나는 분노를 느꼈다. 경기도로 가던 발길을 그만두고 "동학사"로 되돌아 오면
서 "화두(話頭) 들을 모두 외워 보았다. 모두 깜깜한 가운데 한 화두에만 몹시 의심이 갔다.
그 화두는 "나귀의 일이 안 갔는데. 말 일이 온다.(려사미거 마사려말.(驢事未去 馬事驢末)
이란 화두였다.
경허스님은 단숨에 달려 왔다, 학인들을 모두 해산시켜 버리고 조실의문을 걸어 잠근다음
시퍼런 칼을 턱밑에 받치고 얹았다,
만일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이 칼로 찔러 죽겠다는 결심이요. 졸음이 와서 고개를 끄덕일 때
에는 이 칼에 찔려 죽는다는 심정 이었다. 이렇게 석달동안을 지냈다.
그러던중 하루는 문밖에서 가을 추수한 곡식을 소에다 싣고 와서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렸다

"중은 코구멍 없는 소가 된다고 하네;.
"홀문인어비공.돈상삼천시아가(忽聞人語鼻孔 하고 頓賞
三千是我家)라.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무사태평가(六月淵岩山下路에 野人無事太平歌라) 
하는.  소리를 듣자. 온몸이 오싹 하면서 확 깨쳤다.

한숨이 훅 나면서 가슴이 시원 하였다,
즉 "자성본원(自性本源)을 깨치신 것이다.

이리하여 경허조부조사님은 지금까지의 한국불교의 선종의 중흥조가 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증조부조사님은 근세의 불교계 가 모두 경학에만 치우치는 때에 홀로 분발하시어서
이 땅에 떨어진 선풍(禪風)을 잡아 이르키시었고
그의 문하에서 "신 혜월(申慧月.송 만공(宋 滿空). 방 한암(方 漢岩). 전 수월(全 水月). 오 성월
(吳 惺月).큰 스님 같은 선지식이 출현하시어서
최 근세의 우리나라 선계(禪계)를 시켜 내려오게 하신 것이다.

서산(瑞山)에 개심사(開心寺)와 영주 부석사(榮州 浮石寺). 홍주의천장암(洪州天藏庵).은 선사
(禪師)가 도(道)를 수련(修練) 하시던 곳이며. 양산의통도사(梁山通度寺)와 동래의범어사(東來
梵魚寺)와 순천에 송광사(順天松廣寺)와 구례의화엄사(求禮華嚴寺)는 선사(禪師)께서 선학도
(禪學徒)를 지도(指導) 하시던 인연지(因緣地) 인 것이다.

"계묘년(癸卯年) 가을에 범어사에서 해인사(海印寺)로 가시든 도중에 읊으싱 시(禪詩) 한수를
보더라도 성자(聖者)의 선풍(禪風)을 엿 볼수 있다.

 아는것 없는 몸이 이름만 높이나서
 세상은 위태 롭고 혼란한 때를당해
 어디에 숨어 살까 몸둘곳 모르겠네
 어촌과 주막거리 처소야 없으 련만
 이름을 감출 수록 드러남 두렵구려.

"갑진년(甲辰年) 봄에는 오대산월정사(五臺山月精寺)와 적멸보궁(寂滅寶宮)을 친방(親訪)
하시고 금강산을 거처서 안변 의석왕사(安邊 釋王寺)에 이르러 오백나한(五百羅漢)의 개금불
사(改金佛事)에 증사(證師)로 계시다가 회향후에 "홀연( 忽然)히 자취를 감춘후 자취를 알 수
 없었다.
 
술 고기로 방광하고 색 삼매에 들엇으며
탐진치와 백팔번뇌 멀리멀리 여였으니
부처거나 중생이나 내가 알것 아닌지라
평생토록 술마시고 취한광승 되리로다
세상만물 푸른청산 뉘라서 같이할까
일동산에 봄이오니 십방이 꽃향기로다
만약누가 내옆에서 성우일을 물어오면
돌계집의 노래소리  겁밖의 소식일쎄;
 
임진년(壬辰年) 봄 4월 25일에 "태이방(態耳坊)도하동(道下洞) 서재(書齋)에서 울밑에서
풀을 뽑는 학동(學童0들을 바라보시다가 문득 (내가 몹시 병인(病因)하다.)하시므로 여러 사람
이 부축하고 방(房)으로 모셨더니 식욕(食慾)을 전패 하시고 일야(一夜)를 지낸후 홀연히 이튼
날 새벽에 일어나 붓을 들고 선시를 한수를 지으신 것이니

마음달이 우뚝하게 둥그니
달빛이 만상을 가르도다
빛과 경계가 함께 없으니
다시 이 어떤 물건인가;

이것이 일원상(一圓相)을 그린후 붓을 던지시고
"우협(右協)으로 눕더니 졸연(卒然)히 "천화
(遷化) 하셨다는 동리(洞里) 사람들의 전해오는 말이다.

참으로 선사(禪師)께서는 행지(行止)가 초연(超然) 하시고
"임운자재(壬運自在) 하시며
소절(小節)에 구니(拘泥)치 않으시며 돈율(頓律)에 얶메이지 않으셨다.

이러한  선문촬요에 대한것을 조부조사님께서 꼭 필요한 것을 간추려서 고구지담을 뽑아서
손수 편찬한 것을 선종(禪宗)의 근본으로하여 석가세존의가르침과 역대조사님의 법통과
법맥을 계승하면서 
'큰사숙님과 불법전계스승님이 편찬한(대한불교조계종종정 동산큰스님.과
용명스승님의 크신 뜻을 이어서 전계함을 문도회의 불법의덕목으로 삼는다.

***; 위 글의내용은 전법계 스승님께서 증조부조사님의 "선문촬요" 목판본을 주시면서
       소승에게 낱낱이 해석 일러 주시면서 가르쳐 주시었기에 다행이도 몸저 있으면서
       전법제자들에게 일러 주려고 하였으나 부족함이 많아 일러줄수없어서 고민 하던중
       계보록을 지었기에 그 언제인가는 옳바르고 눈밝은 제자가 있다면 대를 이을수 있으
        리라 하고 계보록에 올리는 것이다.

   아;
  부처님의 가르침 "생노병사"의 가르침 뚜렷하건만
  사바계 중생심 업의파랑 태산 같구나
  승속(僧俗)이 무어드냐?
  삭발염의 부질없네. 출가함이 무어드냐;
  세끼 밥세그릇 걱정되어 삭발출가 하였더냐;
  걸친것이 다 떨어진 누더기 납의(衲衣)건만 모른다네.
  입으로는 부처말씀 행으로는 먼곳이네
  이런것을 말세(末世)라오
  들어 보소. 자세히 들어보오;
  한생각이 어떠한줄 아시나요
  그한마음 쓰는마음 그속에서 어이 될고.
  잠시잠간 피한다만 요행이 않이라오
  갖은중생심이 갖은 꾀를 낸다마는
  하늘 땅이 보고있고. 업의귀신 보고 듣소;
  이러 함이 간밤에 꿈속이요
  귀신 알려 주건만 어찌하여 모르고서
  꿈자리가 불편하다 하시는가?
  생과사가 이러하니. 정신차려 살아가오.
  이 소식을 모른다면 영영토록 헤어날길 없을거요.
  푸닥거리 영험있나 백천만번 절을한들 소용있나.
  "직지인심 견성불( 直旨人心 見性佛 )이라는 것
   찰라에 못 깨치면 축생길 뿐이라오.
   사람으로 사람 않일진데 어찌 대할건가?
   나의길 뚜렷하니 부처중생 알바 아니라오
  재재처처 삼라만상 불법도량(在在 處處. 參羅 滿象 佛法 道梁)
  모르나니 지옥이며 아수라요.
  이속을 건너가니 부처세계 극락이라.
  시시비비 갖은소리 갖은꾀.분별없는곳이 정토라네.
  나는야 모르것소. 반야세계 건너가리.
 
         대한선불교조계종 종정 석룡담(룡산)